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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이라는 나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신가요? 흔히들 대중매체에서 잘 알려진 바이킹, 유명한 카메이커 볼보, 그리고 지구상 최대의 사민주의 복지국가와 올로프 팔메 총리를 떠올릴 겁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복지국가와 사민주의 모델이자 성공 사례로 끊임없이 찬사를 받는 스웨덴, 그러나 이러한 스웨덴의 사회가 최근에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노란색이 SD가 차지한 의석입니다.



2018년 9월 9일에 열린 스웨덴 총선에서 여당이던 사민당과 녹색당은 온건당을 필두로 한 보수주의 연합과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선거전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양쪽 모두의 패배였고, 승자는 극우정당인 스웨덴 민주당이였습니다.

 

349석의 전체 의회의석 중 스웨덴 민주당은 63석을 가져가며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로 자리매김했고 동시에 기존 정계의 판을 제대로 뒤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스웨덴 극우 세력의 부상은 어찌보면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12년전까지만 해도​ 스웨덴 민주당은 원외정당이였죠 그러나 2008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가 오면서 4년후인 2014년 총선에서는 무려 29석을 불리며 체급을 점점 키웠고, 다시 4년 후인 2018년에는 마침내 63석이라는, 전체 의회의석의 18% 가량을 차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겠죠

​도대체 왜???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현재 스웨덴이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지 알아야합니다.

 

스웨덴 사민당과 사민주의 노선의 전성기 시절인 1947년부터 1973년까지 지지율은 40%대 후반을 기록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사민주의 국가 스웨덴은 1920년부터 만들어져왔습니다. 당시 스웨덴 내부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영향을 받아서 볼셰비즘 정당을 창설하며 나가떨어지고 독일의 국가모델을 지지하던 보수주의 세력은 1차 세계대전에서의 독일의 패배와 함께 밀리던 상황이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0년에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이 집권을 하게 됩니다. 이들이 사민주의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국내와 국외 상황 모두 안성맞춤이 된 거고 이렇게 스웨덴은 복지국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게 됩니다. 스웨덴은 1차 세계대전때와 같이 중립국을 표방하며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제스쳐를 취했습니다. 살기 위해서 히틀러에게 노르웨이를 점령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까지 해준건 덤이죠

 

덕분에 비슷한 입장이던 이웃나라들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나치 독일의 군홧발 아래에 짓밟혔고 반대로 스웨덴은 나치 독일에 암묵적으로 협력하여 생존한다는 노선을 택했습니다.

그 덕분에 스웨덴은 전 유럽이 참화에 휩쓸릴 동안 스위스와 함께 끝끝내 평화를 유지하였습니다만 이게 씨앗이 된거죠

 

이로 인하여 전후 암암리에 존재하던 스웨덴의 나치즘 극우 세력과 그 가치의 청산 시도 조차 제대로 안되었고, 이는 나중에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된겁니다.


어찌하였든 전후 스웨덴은 복지국가 모델을 지키며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하였습니다. 스웨덴의 대기업들은 중공업을 키워나가며 수출로 외화를 잔뜩 벌었고 국민들은 정부의 복지정책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서구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는 이 시절은 스웨덴 국민들에게 다른 나라들보다도 더 만족스러운 삶을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73년에 1차 오일쇼크(주 : 앞으로 이 오일쇼크 얘기를 자주 하게 될겁니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도 좋고 그 이유도 타당하지만 왜 신자유주의 이전의 경제학 질서가 오일쇼크라는 변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냐는 반성과 대안이 없으면 제2의 신자유주의는 또 올 수 있씁니다.)가 터지게 됩니다. 이미 증가하고 있던 인플레이션이 이 오일쇼크와 함께 맞물리고 폭발하면서 스웨덴의 사회는 경제 불황과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급기야 1976년에는 스웨덴 사민당이 무려 40년만에 정권을 빼앗기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스웨덴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겪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당시에 인플레이션이 오일쇼크에 대한 충격으로 20%대를 찍었으며 이는 박정희의 유신 체제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 등에서도 경제적,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였습니다. 오일쇼크는 당시 주류였던 케인즈 경제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했고 이를 틈타서 프리드리히 하이예크와 밀턴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통화주의 학파들이 경제학의 주류를 차지하기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전세계에 퍼진게 신자유주의 광풍입니다. 즉 오일쇼크가 신자유주의를 불러온 촉매제가 된 겁니다.


스웨덴 역시나 이러한 사태에서 결국 신자유주의 노선을 택하게 됩니다. 1976년 이후 차례대로 정권을 가져간 보수주의자들과 중도세력 모두 신자유주의 개혁울 진행하였고, 비록 기존의 복지국가 모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며 일시적으로 또다른 혼란이 왔으나 오일쇼크가 불러일으킨 인플레이션은 진정시키는데 성공합니다.

 

1982년에 정권을 탈환한 사민당 역시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며 이른바 "제 3의 길"을 따라갔고, 이는 기존 스웨덴의 질서를 끝장내는 한편 오랫동안 암암리에 살아있던 세력이 음지에서 뛰쳐나와 활동하게 만드는데 영향을 줬습니다.

 

한창 오일쇼크가 절정이던 1979년에 스웨덴에서는 극우 네오나치 성향을 가진 노르딕 제국당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은 비록 얼마 안가 해체되며 정치적 영향을 주지는 못했으나 이는 스웨덴에서 극우 세력의 부활을 알렸스니다.

그리고 이들의 후신인 스웨덴당이 1986년에 생겨났고 곧 내부분열로 망하였다가 1988년 마침내 바로 지금 설명하고자 하는 "스웨덴 민주당"이 창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스웨덴 민주당은 네오나치와 스킨헤드 극우가 당의 주류였습니다. 여전히 정치적으로는 온건파가 주류였던 평화로운 복지국가 스웨덴의 정계에 이들이 발을 들이밀기에는 역부족이였고 따라서 스웨덴 민주당은 여전히 듣보잡 원외 정당으로 남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1995년 중도당에서 탈당한 미카엘 얀센이 당 대표가 맡게 되면서 바뀌게 됩니다. 그는 네오나치와 기타 극우들의 색깔을 지우자고 노력하는 반면 우익 포퓰리즘 정책들로 당을 더 정상적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가 당대표에서 물러날때인 2005년에도 스웨덴 민주당은 1~2%대 지지율의 군소 정당이였습니다. 그러나 이 노선의 계승은 이어졌습니다.



새로운 당대표인 지미 아켄손은 이러한 대중성을 높이는 전략을 발전시키고 지속하였습니다. 그의 리더쉽 아래에 스웨덴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반대하게 되었으며 성소수자의 권리 또한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거죠

 

 

그리고 이들에게, 아니 전세계의 극단주의 세력에게 기회가 오게 됩니다. 2008년, 월가 자본이 파생상품 장사 등으로 쌓아놓은 어마어마한 고름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전세계적 경제위기로 찾아온 것입니다.

 



위기가 절정이던 2009년, 스웨덴 경제 역시 제대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당시 스웨덴의 경제성장률은 전후 최악의 수치인 -4.3%를 기록했고 실업률 역시나 8%를 넘기며 말 그대로 국가적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 사태를 이용해서 스웨덴 민주당의 우익 포퓰리즘은 기존 정치권에 환멸이 나고 불신이 깊어진 사람들에게 달콤하게 들렸고, 2010년 총선에서 스웨덴 민주당은 끝끝내 20석을 석권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물론 기존 정치인들은 이를 단순히 일시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였고, 그렇게까지 위협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비록 실업률은 여전히 높았으나 스웨덴의 경제는 반등하기 시작했고 경제위기의 여파가 지나가면서 극우 광풍은 잠잠해질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였죠 그리고 이건 꽤 합리적이고 어찌보면 당연한 결론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웨덴 기존 정치인들은 두가지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첫번째는 유로존 사태였습니다. 유럽 연합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북부 유럽의 공업 중심 국가들이 경제적 발전을 이어갈 동안 남부 유럽의 국가들은 경제 거품에 의존한 성장을 이어졌고 이 모든게 터지자 북유럽보다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스 등의 국가들은 2010년에도 거의 경제 반등에도 실패하면서 11년도부터 다시 경기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이 피그스 국가들의 경기 침체는 유로존 전체의 경기 침체로 피해를 주게 됩니다.


스웨덴 역시나 예외가 아니였습니다. 스웨덴의 경제성장률은 2012년에 다시 -0.6%를 찍었고 실업률 또한 2014년까지 8%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니 스웨덴 민주당 같은 극단주의 세력들이 세를 불리기 안성맞춤의 환경이였던 거죠 그리고 유로존 위기는 2014년이 되어서야 해결되었으나 이미 스웨덴 민주당은 세력 확장에 성공한 상태였습니다.

 


두번째는 스웨덴 밖에서 터지게 됩니다. 오일쇼크에 이어서 또 그 지역이 문제였습니다.



2010년 말, 독재자들과 절대왕정들이 지배하던 중동에서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돌고 있었던 거죠. 경제위기와 함께 물가는 폭등했으며 민생이 어려워졌습니다. 산유국과 비산유국 모두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그동안 쌓여왔던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였고요

 

 

아랍의 봄은 그렇게 시작 하였습니다. 이슬람 세속주의자와 이슬람 근본주의자, 수니파와 시아파, 친서방과 반미주의자 등의 온갖 성향의 사람들이 독재자들과 왕정들을 상대로 들고 일어나거나 서로 대립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평화롭게 진행되던 시위들도 점점 양쪽 모두에서 폭력과 극단의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부 국가에서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몇몇에서는 정부와 국민이 타협을 하였으며, 몇몇에서는 기존 질서가 결국 유지되었고, 일부는 내전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가장 유명한 시리아에서는 피튀기는 혈투가 벌어집니다. 정부군과 세속주의 반군, 쿠르드 민족주의자들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서로 총질을 하였습니다. 이 불길은 인근 이라크로도 번졌고, 수백만의 무슬림 아랍인들이 모국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선지는, 당연하게도, 유럽이였습니다.

다른 국가들은 그래도 인원에 제한을 걸었지만 이 난민들을 무제한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게 당시 스웨덴 정부였습니다. 이에 내전으로 인해 보금자리를 잃은 아랍인들은 스웨덴 내로 수십만씩 들어왔습니다.

 

 

당연하지만 이들 중에서는 스웨덴으로 왔어도 극단주의적인 행패를 부리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사실상 알카에다나 IS 같나 다름없는 가치관을 지녔고, 민주주의의 보호 아래에 그 민주주의를 없애고 이슬람 근본주의 통치 방식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이는 스웨덴인들의 공포를 불러오기에는 충분했던 거죠 결국 사민당 정부는 2015년 11월에 무제한 난민 입국 허용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무슬림들이 입국한 상황이였고 이후에도 많은 난민들이 스웨덴에 진입한 뒤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 민주당은 반이슬람, 반이민 가치를 내걸며 선거 유세를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스웨덴의 복지국가라는 정체성(바로 그들을 오랫동안 방해했던 정체성)을 매우 잘 활용하였습니다.


거기다 이 정당은 우리가 흔히 극우하면 생각하기 힘든 방식으로 접근하였습니다.


보통 우리는 극우라고하면 친기업, 반 복지를 연상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스웨덴 민주당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진보적인 모습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고 반면 온건 보수 성향의 정당들이 오히려 복지를 비롯한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감세하는 모습을 보여줬었고, 이런 정책들이 인기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스웨덴 민주당은 캐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들의 경제적 입장을 현 난민 사태와 엮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스웨덴 민주당은 저들이 스웨덴의 위대한 복지국가 모델을 망치고 있다는 식으로 대중에게 접근했습니다. 이슬람 난민들이 스웨덴인들이 고생하며 구축한 이 복지국가 모델에 무임승차하며 나무를 가꾸지는 않고 열매만 쏙 빼먹는 기생충 같은 존재로 선동했습니다. 난민들은 복지 체제를 땀흘리며 구축한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보상을 빼앗아가는 존재​라고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효과는 먹혔던거죠 보수와 진보 진영 양측 모두에서 이탈자가 발생하였고 스웨덴 민주당의 지지율은 폭등하였습니다. 당시 스웨덴 사민당 총리가 양적완화의 후유증으로 상대적으로 복지를 덜 신경 쓰는 모습도 보였고 전통적 보수 정당 역시 난민을 상대로 강경한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2014년에 49석, 2018년에 63석을 획득하는 선거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스웨덴 정계에 끝끝내 극우가 뿌리를 내리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신규 난민의 유입은 뚝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코로나로 인한 스웨덴에서 경제 불황이 일어나면서 스웨덴 민주당(SD)은 사실상 평균적인 고정 지지율은 이미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스웨덴 민주당은 꾸준히 평균 19% 정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이미 지지 기반이 확보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면 독일의 대표적인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 (Afd)는 이제 메르켈의 장기 집권으로 위축된 독일 사민당에도 밀려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극우 정당의 특성상 확장에는 지지세의 확장에는 한계가 있고, 기성 정치권 역시나 이들을 가장 견제하고 있는 상황으로 변하기 시작한건 고무적입니다. 거기다 코로나 이후 스웨덴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극우 세력이 어떻게 대응할지, 과연 이 극우 열풍이 기존의 제도권 정당들이 잠재우는데 성공할지는 다음 총선에서 결정나겠지요

 

참고한 기사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8-06-26/now-even-swedes-are-questioning-the-welfare-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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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uropa Universalis 원문보기 글쓴이: 하이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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