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때 내 나이가 33세였다. 심지어 이제 갓 데뷔한 풋내기이자, 관심도 못받는 어린 감독이었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았다. 당시에는 야심이 충만한 제작자들이 많았고, 투자자들도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덕분에 내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인상 깊게 본 제작자들과 투자자들이 많았고, 그렇게 나는 <살인의 추억>을 무사히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을 살펴 볼 때, 그때 당시의 '나 (본인)' 같은 처지에 놓인 신인 감독이 과연 <살인의 추억>을 만들 수 있을까?
<살인의 추억>의 배경이 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소위 '대한민국 3대 미결 사건' 중 하나에 속할 정도로 전국민이 아는 사건이었고, 당시 기준으로 여전히 조사 중인 사건이었다. 그만큼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으며, 굉장히 위험성이 짙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런 작품을 만들고싶어하는 감독이, 그야말로 경험이랄 것도 없는 새까맣게 어린 감독에다, 심지어 데뷔작도 실패한 감독이라고? 당신이 만약 제작자나 투자자라면 이런 감독을 지지하고 지원해주겠는가? '첫단추'는 커녕 옷을 고를 수 있는 권한도 안주어진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이 나는 운이 좋았고, '새로움'을 갈망하는 제작진들을 만나 나만의 세계를 온전히 펼칠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가상의 범인을 만들어야 된다'' 라고 간섭하는 일부의 투자자들이 있었지만, 어린 감독을 지지해주면서 힘을 실어주는 제작진들의 야망과 배려가 있었기에 나는 무사히 <살인의 추억>을 완성할 수 있었다.
과연 지금은 (그때의 나 처럼) 그런 위험성을 다 배제하고 풋내기에 불과한 어린 감독을 지지해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살인의 추억> 다음으로 만든 <괴물>도 마찬가지이다. <괴물>은 내가 <살인의 추억> 이후에 만들었기 때문에, 그저 걸림돌 같은 것 없이 순조롭게 만들었을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전례가 없던 작품이어서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진행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어떤 분들은 나보고 ''당신은 아직 어리니까(당시 봉준호 감독은 35세) <괴물> 같은 작품은 당신이 커리어를 좀 더 쌓은 후에 만들면 좋을 것 같다'', ''<괴물> 같은 거 말고 다른 거 만들면 무조건 지원해주겠다'' 라는 얘기도 했다.
당시에는 <살인의 추억> 때와 다르게, 새로움 보다는 '안정감'을 추구하는 제작자와 투자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더군다나 SF와 괴수 장르에 대한 성공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내 기획은 번번히 거절 당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 기획을 끝까지 밀어붙였고, 그렇게 계속해서 제작자들과 투자자들을 겨우 설득한 끝에 결국은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때의 나 처럼 어린 감독이 <괴물> 같은 작품을 만들고싶다 하면, 제작사 문턱에서 거절은 물론이거니와 '' 'OTT' 업계에 의뢰해보세요'' 라고 한단다.
물론 OTT가 또 다른 대안책으로서 훌륭한 선택지가 될 수 있지만, '극장'과 'IT'는 감상하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도 그럴 게 극장과 IT는 서로 완전히 다른 매체이지 않나. 감동과 경험의 차이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OTT를 애용하고 즐긴다. 그러나 창작자로서는 극장의 큰 '스크린'을 생각하며 창작한다. 더군다나 <괴물>은 오직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요소들이 중요한 작품 아닌가. 그리고 OTT라고 해서 모든 지 흔쾌하게 제안을 수락하는 게 아니다.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렇다면 결국 모험을 즐기는 자본가들이 있어야 한다. 나 역시 <살인의 추억>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진행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니까.
물론 내가 <괴물>을 제작했을 때는 2000년대 중반이고 지금은 2020년대이다.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고 더불어 산업적으로도 많이 튼튼해졌다. 또 그 당시 한국영화와 오늘날 한국영화의 위상 역시 많이 다르기 때문에, 산업이 내 생각과 달리 수월하게 프로젝트를 수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감독에게 <괴물> 같은 작품을 지원해주면서 과연 모든 걸 맡기고, 또 어린 창작자가 펼쳐내는 거대한 세계에 대해 간섭을 안할 지는 의문이다.
세계는 계속 인플레이션되고 있고 그만큼 경제적 장벽은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창작자들의 독창성과 상상력 역시 제한되고 통제된다. 그렇다고 산업의 논리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 결국 어떻게 해야 될까? 그 시절도 그렇고 지금도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마냥 희망적인 생각을 통해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도 모른다. 그럼 그냥 ''힘내~ 언젠가는 잘 될거야!'' 같은 형식적인 응원을 해주어야 하나? 도저히 모르겠다.
그런데 이 말들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허망하게 접지 말라'' 고. ''자신이 희망하는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라'' 고. ''절대 후회할 만한 결정은 하지 말라'' 고.
일은 잘 안풀릴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면 어떨까? 여러 난관과 장벽들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지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무언가'를 내세운다면 전개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나 역시 그래왔고.
<살인의 추억> <괴물> 당시의 나 처럼 여러분도 절대 기죽지 말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면서 자신있고 뻔뻔하게 본인의 꿈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본인은 이걸 사랑하고, 죽어도 이거 없이 못살겠다면 별 다른 방법은 없다. 마음에서 사라질 때 까지 그냥 계속 두들기고 달려나가는 수 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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