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듣자니 미주는 원래 홍인종(紅人種, 인디언)들의 땅이었다 하였다. 그러나 지금 각 종족사회를 둘러봐도 홍인종은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이상하게 여겨졌다. 심지어 홍인의 강산에서도 홍인을 볼 수가 없어 매우 힘들게 찾았더니 깊은 산골짜기에 약간의 홍인종이 살고 있었다. 이들의 생업에 대해 말하자면 백인의 밑에서 토지를 개간하거나, 농장과 가내에서 잡일을 하거나, 깊은 산골짜기에서 소와 양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이외에는 동서로 유랑하며 나무 밑에서 잠을 자고, 과일이나 따먹고, 남이 버린 음식을 주워 먹고, 짐승을 사냥한다. 거처는 토굴을 파는 자도 있고 천막을 세우는 자도 있으며 맨바닥이나 숲속에서 그냥 자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일생을 짐승과 같이 사니 보기에 불쌍하고 가증스럽다.
(중략) 모든 사람의 일생은 하느님이 내리신 인생으로 이목구비와 신체도 남들과 다를 바 없는데 무엇이 모자라서 남에게 땅을 뺏기고 광대한 땅에 자신이 살 거처도 없어서 떠돌아다니며 산다는 말인가? 천지에 그들이 먹을 양식이 없어서 아사하고, 동사하고, 병사하여 인종의 수가 날로 줄어가니 어찌 이리 우매한 인종인가!"
위 내용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이정래 씨가 황성신문으로 보낸 편지의 내용 중 일부로, 1905년 10월 28일-30일자 황성신문에 실렸습니다. 보시다시피 아메리카 원주민, 즉 인디언들을 거의 원시의 미개인마냥 깎아내리고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멍청한 인종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당시 널리 퍼져 있는 인종차별적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인 듯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글 말미에 '러일전쟁 평화조약(포츠머스 조약) 이후에 우리도 일본의 속국이나 보호국으로 떨어져 우리도 홍인종의 처지처럼 되는 게 아닐까?' 라고 우려하고 있는데, 불행히도 이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나간지 불과 보름여 뒤인 11월 17일에 바로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만 것이죠.
한마디로 이런 상황입니다.
"인디언들이 망했다길래 구경하러 갔죠.
근데 돌아와 보니 우리 민족이 망해 있는 거에요.
보자마자 눈물이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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