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뉴욕은 마피아의 세상이었다. FBI는 체계적이지도 않았고 그 인력으로 마피아에게는 역부족이었다. 마피아 하부 조직원을 잡아보았자 윗선으로의 연결 고리가 끊어져 있었다.
1979년 3월 코넬 대학교에서 '조직범죄에 관한 세미나' 개최
1970년대 코넬대학교
RICO 법 제정
Racketeer, Influenced, Corrupt, Organization
리코법을 적용하면 어떤 범죄를 저지르라도 명령한 사람도 유죄가 된다.
이 법으로 마피아 조직을 추적, 해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코넬대 법대 교수 밥 블레이크 1936~
밥 블레이키는 마피아 조직원들을 개개인이 아닌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으로 기소해야 한다고 했다. 이 법으로 뉴욕이 마피아 전체를 무너뜨릴 방법을 알게 되었다.
조직범죄 수사 방안 뉴욕지부 1980년 7월
5대 패밀리(제노베세, 콜롬보, 루케세, 보난노, 감비노 ) 상대로 사건을 전개한다는 방안이었다.
왼쪽부터 제노베제, 콜롬보, 루케세, 보난노, 감비노 5대 패밀리의 보수들
마피아 도청하기
감비노는 캡틴 21명, 행동 대원 3백 명, 수 천명의 정보원을 둔 가장 강력한 패밀리였다. 최대 표적은 패밀리의 보스인 폴 카스텔라노 Paul Castellano였다.
폴 카스텔라노
그는 패밀리를 포춘 5백 대 기업처럼 운영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을 읽어서 화이트칼라 보스라고 불렸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범죄조직을 다스리려면 행동 대원과 캡틴들에게 공포감을 줘야 한다는 거였다. 주변에 마피아 암살자 같은 험악한 자들을 많이 두었다. 죽인 사람만 20명 정도 된다.
존 고티 John Gotti는 감비노 패밀리의 캡틴이었다
존 고티
그의 수하 조직원들은 길거리 범죄를 많이 저지르는 흉악범들로 주로 고리대금업과 도박장을 운영하고 강탈을 일삼았는데 그게 더 폭력적이었다.
존 고티의 경호원 안젤로 루지에로는 매우 폭력적이고 거친 남자였는데 존의 돈벌이를 위한 일부터 사람을 죽이거나 경호까지 뭐든 다했다
존 고티와 안젤로 루지에로
정보원들은 안젤로가 엄청난 수다쟁이로 (별명이 '꽥꽥이'였다.) 아는 것도 많고 말도 많은 사람이었다. 법무부장관으로부터 도청 승인을 받았다.
안젤로 집의 전화가 자주 끊기는 일이 발생하자, 전화국에 수리 요청을 했다. FBI가 대신 들어가 전화기에 도청 장치를 하는데 성공했다.
도청을 통해서 '2-3kg 헤로인 거래하는(수백만 달러 해당) 거물'이라는 증거를 수집했다. 그의 최종 보수인 폴 카스텔라노와의 연결할 증거는 충분치 않았다.
루지에로를 거의 6개월 동안 미행해서 또 다른 회의 장소를 찾았다. 그곳이 바로
폴 카스텔라노의 집이었다. 드디어 연결 고리를 잡았다. 카스텔라노의 집 도청이 문제였다. 카스텔라노 집에서 모임은 주로 부엌 다이닝 룸에서 하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 케이블 TV 가 있었다. FBI는 케이블 TV에 전파 방해를 보내 그들을 짜증 나게 만들었다. 드디어 수리 요청이 들어왔다. 문을 열어준 남자는 토미 빌로티 였다. 폴의 오른팔이며 킬러였다.
토미 빌로티(좌)와 폴 카스텔라노(우)
FBI 요원은 TV 뒤를 뜯어서 무사히 도청 장치를 부착했다. 도청 과정에 폴과 가정부가 불륜 관계라는 것도 밝혀졌다
폴과 가정부 글로리아
도청을 통해서 노조와 그들의 연관성에 관한 얘기가 점점 더 흘러나왔다. 그건 조직범죄의 진정한 문제점이 나타난 것이다. 조직범죄 집단은 미국의 주요 노조를 장악하고 있었다. 엄청난 권력이었다. 운송, 항만, 병원, 호텔 종사원, 증권, 보험회사 노조 등 파업을 통해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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