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30대 도널드 트럼프는 인터뷰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 거죠. 저는 뉴욕에서 이 정도의 규모를 본 적이 없어요. 현재 부동산을 놓고 보자면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가 될 겁니다."
'트럼프 타워'도 마피아의 타깃이었다.
마피아는 입찰에 참여했다. 건설 회사를 운영한다면 마피아와 거래를 해야 했다.
건설 현장에서 말 안 듣는 작업반장은 건물 꼭대기에서 던 져졌다.
카사 스토르타 식당은 콜롬보 패밀리의 고위급이 만나는 장소였고 FBI는 거기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 랠프 스코프는 행동 대원이었지만 시멘트 콘크리트 노조의 지역 위원회 회장이었다. 즉 랠프 스코프가 FBI에서 보면 키 플레이어였다.
스코프는 사무실을 믿지 못해 자기 차에서 사람들을 만나 사업 이야기를 했다.
FBI는 당연히 차에다 도청 장치를 했다.
마피아는 협박하면서 "돈을 내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라"
그는 뉴욕에서 진행되는 모든 건설 프로젝트의 노동자들을 조종했다. 스코프는 건설업자에게 자신들에게 협조 안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확실히 했다.
마피아는 건설 노조를 장악해서 건설 산업 전체를 장악했다. 마피아는 노조를 조종해서 파업을 일으켜 기업의 기능과 수익을 막았다.
랠프 스코프는 사람들이 마피아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겁을 줬다.
랠프 스코프의 대화를 도청한 결과,
콘크리트 클럽에는 8개의 회사들이 참여한다. 그 회사들은 마피아 패밀리와 연결돼 있다.
2백만 달러가 넘는 콘크리트 공사는 그 여덟 개의 회사에 할당될 예정이고 그 외에는 입찰할 수 없다. 한 번의 입찰을 통해 마피아는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
마피아는 맨해튼의 그 많은 콘크리트 공사의 공사비의 2%를 거둬들였다.
위원회(Commission)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맨해튼에서 건설되는 모든 대형 건물에 중심적으로 관여했다.
마피아를 기소하려면 일련의 숨겨진 범죄들과 위원회를 연결시켜야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임무는 위원회가 살인을 승인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다.
FBI 요원 샬럿 랭(좌) 과 팀장 팻 마셜
6년 전 1979년, 카르 미네 갈란테의 살인 사건
갈란테는 브루클린 한 식당에서 괴한 5명에 의해 총탄을 맞고 즉사했다.
시칠리아 마피아 일원이었던 갈란테는 결국 보난노 패밀리를 장악한 인물이었다.
보스를 죽이려면 위원회의 승인이 있어야 했다. 갈란테는 다른 마피아 보스들의 분노를 샀는데 대중과 언론에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미국 마피아의 최고에 오르려 지나치게 과격한 행보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저격범 중 한 명이 브루노 인델리카토 였다는 정보가 많았으나 정보원의 정보로 기소는 할 수 없었다.
브루노 인델리카토
그는 보난노 패밀리의 행동 대원이었는데 갈란테 살해 직후에 캡틴으로 승진했다.
브루노는 고삐 풀린 망아지라고 불릴 만큼 거칠었다.
총격 당시 차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식당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여성이 차량 넘버를 적었다. 버려진 그 차의 지문을 채취했으나 일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6년 후 그 차량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차량 손잡이를 떼어 손바닥 지문을 채취해 브루노 임을 확인하게 된다. (원래 손바닥 지문이 없었는데, 정보원을 통해 브루노를 찾아내 강제적으로 손바닥 지문을 채취했다.)
(위)브루노가 살인 현장에 몰고 갔던 차
(아래)브루노의 손바닥 지문
살인 사건이 벌어진 지 30분 한 소셜 클럽 감시 카메라에서 브루노가 감비노 패밀리의 부두목에게 축하 인사를 받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자기 보수를 살해한 브루노가 다른 패밀리의 부두목에게 축하를 받았다면 이는
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이 될 수 있다.
그때까지 위원회가 회의하는 사진은 누구도 찍지 못했다.
1984년 5월 15일 정보원을 통해 위원회가 소집되어 전 패밀리 보수가 모인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런 전례가 없었기에 믿기지 않았다. '콘크리트 클럽'에 관한 논의를 할 거라는 것이었다.
패밀리 보수들은 모임이 노출될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 지역에 차량들이 있는지 정찰하고 만일 발견되면 모임을 취소한다. 그래서 FBI는 모임이 1시에 열리면 2시에 카메라 장비를 설치한다. 보수들이 들어간 건 놓쳐도 나오는 건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2시간 후에 보수들이 집을 나섰다.
(첫째)제노베세 패밀리 보수 뚱보 토니 살레르노
(둘째)토니 덕스 코랄로
(셋째)콜롬보 패밀리 보스 대행 젠나로 란젤라
(넷째)폴 카스텔라노
1985년 2월 24일 다음날 5대 패밀리 보수를 체포할 예정이었으나, NBC 뉴스 팀에서 전화가 왔다. 9시 저녁 뉴스에 이 사실을 보도하겠단 것이었다. FBI는 놀라서 바로 체포 작전을 시행한다. 폴 카스텔라노는 저녁 식사 중 체포되어 차로 이송 중에 라디오에서 속보가 나왔다. 5대 패밀리 보수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 작전이 시작된다는 내용이었다.
역사적인 일이었다. 조직범죄 패밀리의 모든 보스를 체포하는 게 흔한 일이 아니었다.
카스텔라노는 2백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연방 법원을 나섰다.
줄리아니는 회고했다. 카스텔라노는 허세 가득했고, 뚱보 토니는 있는 그대로 행동했다. "당신이 기자야. 꺼져, 난 기자와 얘기 안 해."
1985년 12월 16일 오후 5시 30분
보스 중에 보스, 빅 폴리 살해
폴 카스텔라노
트렌치코트를 입은 세 명의 남성이 총격을 가했다
마피아 세계에서 규율을 어기면 인생은 순식간에 날아간다.
우리 중에 어떤 놈이라도 마약 때문에 잡히거나 마약에 관한 소문이 돌면 그들이 죽일 거야." (카스텔라노의 목소리)
고티와 루지에로는 깨달았다. 카스텔라노가 재판에서 그 녹음을 들으면 죽은 목숨이란걸. 고티와 루지에로는 먼저 자기 보스 카스텔라노를 친 것이다.
자기 목숨이 달렸으면 의리고 뭐고 없다. 일반 양아치하는 짓이랑 다를게 없다.
이후 존 고티는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이 된다.
1992년 결국에 가석방없는 종신형을 받았다. 2002년 인후함으로 사망한다.
배심원단이 평결을 내렸다. "유죄 Guilty"
마피아 대부 셋을 포함해 여덟 명의 조직원들이 위원회 멤버로 활동한 것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뚱보 토니는 100년 종신형을 받고 수감 중 1992년 7월 당뇨 합병증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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