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은 잭 토랜스의 과거사와 불안정한 심리에 대한 묘사로 가득했는데, 영화에선 그걸 거의 다 쳐내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호텔에 와서 점점 미쳐갔다' 정도의 묘사에 그칩니다.
- 예컨대 잭 토랜스는 한때 나름 유망한 작가였지만 심각한 알콜 중독에 빠졌으며, 술을 끊은 후로도 종종 강한 유혹에 시달립니다. 호텔 일을 맡기 전까지는 잠시 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었구요. 영화에선 제대로 안 나왔죠.
- 교사로 일하던 잭 토랜스는 자신의 차 타이어에 구멍을 내려는 학생을 보고, 만취 상태에서 두들겨팹니다. 학생은 중태로 병원에 입원했고 잭은 당연히 정직당합니다. 알콜 중독 경력으로 인한 고용 불안,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은 잭 토랜스의 멘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죠.
- 잭 토랜스는 아들에게 거칠게 손을 대어 다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에선 잭이 환영과 대화하다가 '살짝 밀쳤다'고 실토하는 장면이 나오죠. 하지만 실제로는 거칠게 내팽개쳐서 대니의 팔을 부러뜨렸습니다.
- 잭 토랜스 또한 어릴 적 자신의 알콜 중독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와 닮아가는 자신을 인식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묘사가 자주 나옵니다.
- 또한 오버룩 호텔에 얽힌 어두운 사건들을 매력적인 소재로 판단하여 소설을 쓰려고 하는데, 호텔의 평판을 염려한 지배인에게 제지받는 것도 스트레스의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잭 토랜스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많이 사랑합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죄책감, 유년 시절에 학대당한 기억, 알콜 중독으로 인한 고통이 뒤섞여 갈등하는 잭의 내면 묘사가 소설의 상당 분량을 차지합니다.
2. 샤이닝
- 호텔의 흑인 요리사인 딕 할로런이 대니에게 샤이닝에 대한 얘기를 해주는데, 소설에선 그 설명이 보다 자세히 나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샤이닝'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일상에서는 그것이 직감이나 본능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다만 그것을 특별한 초능력으로 자각하는 사람이 극소수일 뿐.
- 대니가 시험 삼아 자신의 메가톤급 샤이닝을 할로런에게 발산했을 때, 할로런이 큰 충격을 받고 피를 흘리는 장면도 있습니다.
- 잭 토랜스가 호텔의 악령들에게 특별히 강한 영향을 받은 것에는 본인의 부끄러운 과거도 작용했지만, 특별히 예민한 지각 능력을 가진 탓이기도 합니다.
- 소설에선 실제로 잭과 대니와의 교감이 강하게 이루어지고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머릿속에서 읽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이를 통해 잭 토랜스 또한 남다른 '샤이닝'의 소유자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3. 기타
- 가족이 호텔에 오기 전부터 웬디는 아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남편 잭에게 경계심을 갖는 동시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한동안 신경질적인 남편에게 잡혀 살았던 것으로 묘사됩니다.
- 웬디는 눈에 띄는 금발 미인이라는 설정인데, 영화에서는 그다지 예쁘지 않고;; 다소 음울한 인상의 셜리 듀발이 캐스팅되었습니다. 이 캐스팅은 스티븐 킹은 물론 상대역인 잭 니콜슨까지도 반대했다고 합니다.
- 호텔의 악령들이 구체화된 형상은 영화판에서도 여럿 그대로 등장합니다. 바텐더 로이드, 웨이터로 나오는 전 지배인, 237호실의 여자 등등...
- 소설에선 호텔 정원에 있는 동물 장식들도 호텔에 빙의되어 살아 움직이며 주인공 일행을 궁지로 몰아넣는데, 이건 영화에서 깔끔히 버렸습니다.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큰 예산을 써야 했을 수도 있고, 영화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죠.
4. 결말
- 딕 할로런이 대니와 교감하며 위기를 감지하는 장면은 영화에서도 어느 정도 묘사됩니다. 하지만 기껏 도착하자마자 도끼를 맞고 한방에 죽는 영화에서와는 달리, 소설에서는 웬디, 대니와 함께 끝까지 살아남아 탈출합니다. 그리고 한동안 대니와 머무르며 그에게 샤이닝에 대해 많이 가르쳐줬다고 합니다.
- 결말을 보면, 완전히 미쳐서 아내와 아들을 죽이겠다고 돌아다니던 잭 토랜스가 강력한 샤이닝을 가진 대니의 영향으로 잠시나마 호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제정신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들과 아내의 탈출을 돕기도 합니다.
- 제정신이 아니었던 잭이 보일러 압력을 조절하는데 실패한 바람에 호텔은 폭발하고, 잭도 폭발에 휘말려 죽습니다. 이 때 가까스로 일행이 탈출하는데 성공하구요.
- 끝까지 절뚝거리며 대니를 쫓아가다 미로에서 길을 잃고, 모양 빠지게 얼어죽는 영화의 결말과는 확연히 다르죠. 영화를 싫어한 것으로 유명한 스티븐 킹이 그 중에서도 가장 싫어했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김형욱이 미국 하원의 청문회에 나와 한국의 대통령에 대해 증언을 한 때가 10.26 사태의 40일 전이라고 소개되는데
실제론 1977년이고 10.26은 1979년이므로 40일 전이 아니라 약 2년 전입니다.
2. 회고록의 집필?
영화 속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폭로한 김형욱의 회고록이 프레이저 청문회부터 있었다고 나오지만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이후에
김형욱이 1979년까지 2년에 걸쳐 집필을 했습니다.
3. 김재규와 김형욱이 친구?
영화 속에서 김재규와 김형욱은 친구 혹은 군대 동기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아니며 극적인 전개를 위한 장치입니다.
4. 김재규가 5.16 참여?
영화 속에서 김재규가 5.16 군사쿠데타에 가담했다고 나오고 있지만 김재규는 5.16 쿠데타에 가담한 적이 없습니다.
+ 영화 속에서도 나오듯이 김형욱은 5.16 쿠데타 세력이 맞습니다.
5. 김재규와 김형욱의 만남?
영화 속에서 김재규는 워싱턴에 김형욱을 직접 만나러 가지만 실제로는 아닙니다 두 차례에 걸쳐 '편지'로만 귀국을 설득했고
그 외의 사항도 중정 해외담당 차장 윤일균을 통해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회고록을 받는 것도 김재규가 아니라 윤일균이
권총을 들고 찾아가 설득해 2천장 분량의 원고를 받아냅니다.
6. 김형욱의 횡령?
영화 속에서 김형욱은 개인재산을 축적하지 않았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아닙니다 그는 중정부장에서 해임된 뒤 2천만 달러를 횡령해서 미국으로 망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국내 부동산도 착복을 하고 있었고 나중에 회고록을 걸고 국내 부동산을 거래를 제시합니다.
7. 김형욱의 대의?
영화 속에서 김형욱은 대의와 혁명을 위하듯이 언행을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닙니다. 그는 박정희 반대세력 고문은 물론 야당
대선후보 윤보선을 저격하라는 명령까지 내렸고 김영삼 의원 초산 살해 미수까지 저질렀을 정도로, 역대 중정부장 중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질이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의 행보가 너무나 악독해서 이만섭 의원이 3선 개헌 때 그의 해임을 조건부로 건 것입니다
8. 김형욱의 해임?
영화 속에서는 이만섭 의원이 3선 개헌을 반대하자 김형욱이 직접 고문을 하고 3선 개헌을 통과시키는데 실제로는 아닙니다.
박정희는 3선 개헌 통과를 위해 이만섭 의원의 조건부 해임을 자가숙정 명분으로 수락하고 박정희가 직접 김형욱을 해임합니다.
영화 속에서 쉬라고 말을 하는데 이 부분은 역사적으로 맞습니다.
9. 김형욱의 권총?
영화 속에서 김형욱이 항상 권총을 지니고 있는데 그 이유가 해임된 후에 김형욱에게 고문당한 피해자들의
살해협박이 끊이질 않아서 권총을 빼돌려 항상 지녔다고 합니다. 김형욱은 절대로 영화 속에서처럼 선량한 피해자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끝까지 간교했습니다.
10. 회고록의 출간?
영화 속에서는 차지철의 음모로 회고록이 일본에서 출간이 되지만 실제로는 아닙니다 김형욱은 회고록을 걸고 김재규와 여권문제 해결, 국내 부동산, 150만 달러로 거래를 합니다. 김재규는 거래를 승낙하나 오히려 김형욱은 돈을 받고 일본에서 회고록 요약본을 출간하는
이중행동을 펼칩니다.
그런데 이 출간에 대해서 원작도서는 조금 다르게 설명합니다. 중정 해외담당 차장 윤일균에 따르면 김형욱은 만일을 대비해 회고록 요약본을 일본 금고에 예금과 같이 넣어두었는데 누군가 갑자기 출판을 냈고 김형욱도 매우 당황했다고 합니다.
+ 영화에서는 원작도서의 이런 내용을 차지철의 음모로 둔갑을 시켰습니다.
11. 사설정보기관?
영화 속에서 박정희가 중정조차 믿지 않아서 사설정보기관을 운영했다고 나오는데 실제로 아닙니다.
사설정보기관은 박정희가 아니라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이 별도로 운영을 하였습니다.
그는 병적일 정도로 권력집착과 정보독점욕이 심해서 사설정보기관을 설치해 중앙정보부의 업무와 권한을 침해했습니다.
12. 김재규와 차지철의 알력?
이러한 차지철의 지록위마적 행동에 김재규는 총까지 빼어들고 차지철과 다툼을 하지만 실제로는 아닙니다.
기록에 따르면 김재규는 "내가 중장 출신인데 저런 대위 출신이랑 옥신각신해야겠냐"
라면서 분을 삭였다고 합니다
+ 차지철은 육사에 탈락했고 간부후보생으로 군입대
13. 박정희의 차지철 편애?
이것은 실제로 맞습니다.
박정희는 차지철을 편애하여서 차지철이 중정을 월권하고 의전을 뒤엎는 등 각종 호가호위를 해도 묵인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차지철의 안하무인적 행동 때문에 김재규가 10.26을 일으켰다는 정치적 가설 중 하나가 있는데
영화는 이 가설을 중점적으로 탐구하고 묘사합니다.
14. 김재규의 김영삼 조력?
영화 속에서 김재규는 김영삼 의원을 조력해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실제로 맞습니다.
실제로 김재규는 김영삼, 김대중에게 호의적이었고 몰래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시위가 일어나면 학생들을 걱정하고
군인들이 발포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장관시절 로비가 들어와도 모두 거절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박정희 살해로 법정에 섰을 때도 모든 죄는 자신에게 있으며 부하들은 죄가 없다고 선처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15. 로비스트 데보라 심?
영화 속에서 김형욱과 김재규를 조력하고자 나오는 로비스트 데보라 심이 나옵니다 .실제 모델은 '수지 박 톰슨'으로
그녀는 1971년 연방하원의장 칼 앨버트의 비서가 되면서 미 정계의 인맥을 쌓습니다.
그녀는 미 의원들 사이에서 염문설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그녀를 이용해 미국 정재계에 로비를 하였습니다.
16. 하원의장 방한?
영화 속에서는 1979년 10월에 미 하원의장과 수지 박 톰슨이 방한을 한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아닙니다.
1971년 8월입니다. 중앙정보부는 이 때부터 그녀를 통해 미국 정재계로 로비를 하였으며 수지 박 톰슨은 1971년부터 77년까지
미 하원의장 칼 알버트의 비서로 활동을 했습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당시 중앙정보부는 그녀에게 '궁정동식 접대'를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미국 시민권자이자 정치 로비스트였을 뿐 영화 속의 모습은 극적장치를 위한 픽션이 큽니다.
17. 차지철의 발언?
영화 속에서 부마항쟁이 발생하자 차지철이 이런 말을 합니다 "캄보디아에서는 3백만명도 죽였는데 우리가 1,2백만명 정도 시위대를 탱크로 밀어죽이는 게 대수냐?"
기록에 따르면 차지철은 아내에게 성실했고, 어머니에게 효자였고 집에 기도실까지 만들어 하루 두 차례 예배를 꼭 드리는
성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위 내용과는 별개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18. 심수봉과 신재순?
이 영화에서는 궁정동 안가가 나옵니다. 책에 따르면 중앙정보부는 정치공작 뿐만 아니라 박정희의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채홍사' 에도 관여를 했다고 합니다 (*채홍사 - 박정희를 위해 예쁜 여자를 데려오는 것)
1979년 10월 26일에도 가수 심수봉은 내자호텔 커피숍, 모델 신재순은 프라자 호텔에서 궁정동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궁정동은 김영삼 정권 때 철거되었지만 영화는 각종 기록물을 토대로 실제 궁정동의 모습을 최대한 가까이 살려냈다고 합니다.
19. 박정희의 죽음은 박근혜 때문?
영화에서는 박정희와 김재규의 틀어진 충성과 차지철로 인한 고립감으로 10.26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접근법을 취하지만
원작 도서에서는 10.26의 발생원인에 조금 다른 이유를 제시합니다.
바로 '박근혜-최태민'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재규는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접근해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구국여성봉사단을 만들어 기업들에게서 돈을 받아내는 정황을 포착합니다. 이 수법은 최순실에 의해서 반복됩니다. 김재규는 박근혜-최태민을 조사해 박정희에게 보고를 했는데 박정희는 되려 김재규를 불신하고 위 세 명을 한꺼번에 불러 자신이 직접 대질심문을 합니다. 박정희는 박근혜와 최태민의 말만 신뢰하고
오히려 두 명 앞에서 김재규를 타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에 모멸감을 받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사살하게 되었다고 책에서 묘사합니다
김재규의 이러한 증언은 항소이유보충서에서도 나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영화와 원작도서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김재규가 받은 '인간적 모멸감' 입니다
20. 김재규가 육본으로 간 이유
영화 속에서도 김재규가 육본으로 간 이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원작도서에서도 명확히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안동일의 저서 <10.26은 살아있다>를 참고해야 합니다.
이 도서에 따르면 김재규는 육본에 의해 계엄령이 선포되면 4.19와 같이 혁명이 발생하고 미국이 지지할 것이라고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거사를 인정받고 유신정권을 끝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또한 명확하진 않습니다.
영화에서 케이틀린 피츠제럴드가 연기하는 대프니 피츠제럴드 FBI 요원은 영화에서 가상으로 만든 캐릭터로 제리 루빈을 유혹하는 인물은 실제 없었다. 실제 위장해서 데모 집회자들 사이에 들어간 요원은 3명이었고 그중 대프니 캐릭터와 가장 유사한 캐릭터는 제리 루빈의 보디가드로 위장한 로버트 피어슨 뿐이다.
피어슨은 위장하기 위해 머리와 수염을 기르면서 바이커로 위장하고 모터사이클 무리에 자연스럽게 묻혀들어갔다.
* 보비 실은 3일간이나 재갈 물리고 결박당했다
영화에서 호프만 판사가 보비 실을 재갈 물리고 결박한것은 짧은 순간이고 곧바로 슐츠가 재판 무효처리했지만 실제로는 무효처리되기 까지 3일간 재갈 물리고 결박을 당했다.
그 이후에 그가 빠지면서 '시카고 8'이 아니라 '시카고 7'으로 불리게 되었다. 카메라가 법정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스케치 그림이 공개되며 실은 그런 상황에서도 굳세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자 소리를 내고 종이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했다고 한다.
* 실제 재판에서는 셀레브리티들이 증인대에 섰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재판에서 많은 셀레브리티들이 증인대에 섰다. 시인 알렌 긴스버그 (영화에서는 집회에서 시를 읊는 모습 보임), 작가 노먼 메일러, 포크 가수인 주디 콜린스와 알로 거스리 및 코미디언 딕 그레고리이다. 실제 재판중 호프만 판사가 변호인과 다툼중에 긴스버그 시인이 '음음음'라고 하면서 불교식 허밍을 하자 증인대에서 내려오라고 요청했다.
* 호프만 판사는 총 175번의 법정 모독죄 선고
호프만 판사는 실제 재판에서 무려 총 175번의 법정 모독죄를 선고. 실제 항심에서 호프만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변호인단에게 '고의적 반감이 있는 밥정 모독죄'를 남발했다고 공지하였다.
* 베트남전 사망 군인 이름은 마지막 선고중에 읽지 않았다
영화 마지막에 에디 레드메인(톰 헤이든)이 베트남전 사망 군인들 이름을 읽는 것은 실제 마지막 선고시에 읽지 않았고 재판 초기에 일어난 일이고 1969년 10월 15일 베트남 종식의 날에 읽었고 읽은 사람은 데이비드 델린저였고 호프만 판사는 델린저가 10여명의 이름을 읽은후 저지시켰다. 당시 미국과 남 베트남 깃발들도 테이블에 올렸고 호프만 판사는 이것들을 없애도록 했다.
* 데이비드 델린저는 법정 집행관에게 주먹질 하지 않았다
비폭력주의자인 데이비드 델린저는 영화에서 흥분해서 법정 집행관에게 주먹을 날리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는 아무도 때리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장면은 그가 평화주의자가 된 배경을 연상케 한다. 그가 예일 대학생일때 예일 대학생들과 뉴 헤이븐 주민들간 다툼이 있을때 그는 한 남자를 때려서 의식을 잃게 만들었고 그뒤 그는 평화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992년 영화에 대한 기억은 아련하지만 영화의 주연까지 소화한 휘트니 휴스턴의 중량감 있는 사운드트랙은 고금의 가장 잘 팔린 앨범 중 하나로 남아있다.”
팝계의 신기록은 거의 그녀의 것이었다. 1986년 데뷔, ‘미모와 가창력’이라는 현대의 팝가수 조건을 겸비한 흑진주는 스탠더드 경향의 소울을 찾는 고급 관객들을 주요 구매층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리듬 앤 블루스의 대표적 가수로서 1980년대를 석권한 그녀는 90년대에도 또 하나의 찬란한 신기록을 추가했다. 영화 <보디가드>의 삽입곡 「I'll always love you」가 기록의 주체였고 그 내용은 ‘빌보드 싱글 차트 14주 연속 1위 점령’이었다. 이 기록은 방금 전 차트 13주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던 「End of the road」의 보이즈 투 멘(Boyz II Men)을 허탈하게 할 만한 것이었다.
휘트니 휴스턴의 빅히트 싱글 「I'll always love you」를 수록한 영화 <보디가드> 사운드트랙 앨범은 1993년 당시 팝계의 천하통일을 일궈냈다. 불황 속에 1천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고 차트 수위에서도 장기간 동안 머물렀다. 이 앨범이 지니는 가치는 그러한 폭발적 판매고와 관련한 부분일 것이다. ‘쉽게 들리고 친숙한 분위기’의 노래를 찾는 대중의 구미를 자극하는 사운드트랙은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로 크게 히트한 「I'll always love you」, 「I have nothing」, 「I'm every woman」을 비롯해 케니 지, 아론 네빌, 리자 스탠스필드, 조 카커 등 호화 멤버들이 손을 보탠 곡들 모두가 편한 감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2.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1977)> 판매량 : 1천5백만 장
“1970년대 말 팝계를 강타한 디스코의 정체와 음악을 가늠하기에 적절한 교과서적 앨범”
영국의 형제 보컬 그룹 비지스(Bee Gees)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사운드트랙 음반 <토요일 밤의 열기>는 바로 디스코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킨 앨범이었다. 당시 무명 배우였던 존 트라볼타를 일약 청춘의 우상으로 창조해낸 영화와 함께 음악을 맡은 비지스를 ‘디스코 음악의 황제’로 탄생시켰다. 이 음반은 또한 팝 음악사에 사운드트랙 앨범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갖가지 기록을 쏟아냈다. 1천5백만 장의 판매고, 4곡의 싱글 차트 1위 랭크, 그룹의 맏형인 배리 깁의 4연속 넘버원 히트기록 작성 등, 비지스는 거뜬히 팝계의 정상에 등극했다.
많은 사람들을 춤의 향연으로 이끈 비지스 디스코의 대표작 「Night fever」 「Stayin' alive」 「How deep is your love」 등이 모두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1970년대 말 팝계를 강타한 디스코의 정체와 음악을 가늠하기에 적절한 교과서적 앨범이다.
3. <퍼플레인(Purple Rain, 1984)> 판매량 : 1천3백만 장
“지구촌 전역에 프린스의 존재감을 결정적으로 알린 기념비적 앨범”
마이클 잭슨이 <Thriller>를 통해 백인적인 흑인 음악이라야 전 방위로 어필한다는 팝 마켓 룰을 규명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선 동시에 프린스(Prince)라는 흑인 슈퍼스타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자칭 ‘왕자’는 1982년 앨범 <1999>로 비평가의 찬사와 대중적 성공을 동시에 얻은 바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지구촌 팝 음악 팬들의 뇌리에 각인시켜준 것은 ?의 백 밴드 레볼루션(Revolution)과 함께 만든 바로 이 사운드트랙 앨범 <퍼플 레인>이었다. 이 음반은 그해 1천만 장이 팔려나가며 마이클 잭슨의 황제 자리를 위협하는 정도의 막강한 위력을 과시했다. 그의 음악은 모타운(Motown) 소울 기반 댄스음악인 마이클의 것과는 달리 펑키한 소울과 록을 배합한 고출력 사운드였다.
대단히 탄력적이고 진했으며 강렬했다. 이 앨범에서 차트 순위에 오른 세곡의 빅 히트 싱글 「When doves cry」, 「Let's go crazy」 그리고 주제가 「Purple rain」이 모두 그랬다. 그는 또한 작사와 작곡은 물론 연주까지 섭렵한 만능 뮤지션이었다. 그의 위치는 덕분에 한층 더 격상되었다. 아카데미 음악상을 거머쥔 그의 음악은 그 자체로 매우 충격적이었다. 자극적으로 반복되는 힘찬 기타 리듬 패턴과 울부짖듯 성적 유혹을 토해 내는 보컬은 실로 경탄을 자아낼 만큼 수준 높은 기량을 자랑했다. 연주는 약동감 넘치는 록 그룹의 그것이었지만 보컬의 힘찬 에너지는 소울 창법에 가까웠다. 때론 강하면서 때론 부드럽고, 동시에 춤추기 좋은 연주는 흑백을 통합하는 매력의 사운드였기에 그 진가를 더욱 강력하게 발휘했다. 동시대 영상 음악을 틀어주던 국내 커피숍에서도 동명 타이틀 주제가가 나오는 음악 영상은 주문이 밀려드는 단골 메뉴였다.
4.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994)> 판매량 : 1천2백만 장
“간추린 1950년대 이후 미국과 미국의 음악 역사!”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1950년~70년대 미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 속으로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를 투입시킨다. 단지 지능이 낮을 뿐인 검프의 희극적인 활약상과 드라마를 지켜보며 추억을 회상하고 흐뭇한 감동을 받게 되지만 그러한 영화의 역사성을 적확히 대변해주는 영화음악이 아니었다면 그 시대를 되돌아보는 향수는 반감되었을 것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Hound dog」를 비롯해 밥 시거의 「Against the wind」까지,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노래들은 당시의 시대적 감성과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사운드트랙 위를 달리는 올디스 넘버들은 가히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미국 ‘대중음악사’라 할 만하다. 그 곡들이 나오는 순간이 기막히게 절묘하다. 역사적 현장이나 극 중 중요한 장면일 때면 언제나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노래, 또 그 시절의 히트곡들이 어김없이 흘러나와 시공간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베트남전 출정 때는 도어스의 「Break on through (To the other side)」와 아레사 프랭클린의 「Respect」가 반전과 저항의 소리를 대변하고, 여자 친구 제니가 히피들의 천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는 장면에서는 스콧 매켄지의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 in your hair」, 이별 장면에서는 버즈(Byrds)의 「Turn turn turn」,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TV장면에서는 피프스 디멘션(The Fifth Dimension)의 「Aquarius/Let the sunshine in」이 절묘하게 흘러나와 극의 이해를 돕는다. 당대에 획을 그은 수많은 고전 팝 음악들이 올드 팬들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어린 포레스트 검프가 모종의 관계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장면은 특히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는다. 「Hound dog」에서 보여줬던 프레슬리의 골반 춤이 포레스트 검프의 불편한 다리를 보고 따라 한 것이라는 영화의 유쾌한 우화적 해석.
5. <더티 댄싱(Dirty Dancing, 1987)> 판매량 : 1천1백만 장
“<토요일 밤의 열기> 이후 10년 만의 댄스 무비, 영화 자체로 화제가 됨은 물론 일대 파란을 일으킨 사운드트랙.”
1987년 여름에 개봉되어 북미에서만 6천3백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거둔 이 영화 <더티 댄싱>으로 인해 이전까지 줄곧 조연만 해온 패트릭 스웨이즈는 당대 최고의 ‘섹시 가이’로 등극했다. 여성 관객들은 그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으며 환호성을 터뜨렸고 남성들은 여자 주인공 제니퍼 그레이의 귀여운 자태에 반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패트릭 스웨이지가 제니퍼 그레이를 양손으로 받쳐 번쩍 들어 올리는 순간은 쉬이 잊히지 않는 명장면으로 인구? 회자되었다. 춤을 소재로 재미를 본 영화인만큼 사운드트랙 앨범의 인기도 실로 대단했다. ‘더티 댄싱 신드롬’으로 불릴 정도로 끊이지 않는 애정은 곧장 <모어 더티 댄싱(More Dirty Dancing)> 앨범 발매로 이어졌고 1988년 5월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는 <더티 댄싱>이 <모어 더티 댄싱>은 3위에 동시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앨범은 현재까지 1천1백만 장 이상이 팔려 다이아몬드 음반을 수상했다.
6. <타이타닉(Titanic, 1997)> 판매량 : 8백만 장
“존 트라볼타와 케빈 베이컨이 반란의 춤 영화에서 춤추는 품행 제로 청춘을 연기한 반면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구명보트 없는 반항 영화’에서 댄싱 호남을 연기해 여심을 흔들었다. 동시에 초대형 유람선 타이타닉은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과 함께 지구촌 관객들의 마음속에 영원불멸의 닻을 내렸다.”
아카데미 11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초호화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 당대 최고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18억 3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수치의 흥행 수익을 거둬들이며 전무후무한 흥행 기념비를 세웠다.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로 각인된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이 영화로 할리우드 최고 흥행 감독으로 우뚝 섰다. 그야말로 ‘세상의 왕(King of the World)’이 된 셈.
영화음악은 <에일리언2(Aliens)> 이후, 10여 년 만에 카메론과 재 의기투합한 작곡가 제임스 호너(James Horner)가 맡았다. <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 <브레이브하트(Braveheart)> 등으로 유명한 그는 여기서 웅장하면서 서정적인 선율이 돋보인 음악을 작곡해 넣었다. 또한 어마어마한 장관에 부합한 스코어로 감동을 주었다. 특히 클라이맥스에 사용된 곡들 중 타이타닉의 침몰을 묘사한 「The sinking」과 「Death of Titanic」 등에서는 메인 테마 「My heart will go on」의 멜로디가 배합되어 있어 두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켜주었다.
7. <라이온 킹(The Lion King, 1994)> 판매량 : 1천만 장
“만화 왕국 디즈니와 감상적인 노래의 대가 엘튼 존이 협력해 영화와 음악의 정상에 오른 1994 화제작.”
영화 <라이온 킹>의 사운드트랙에 실린 음악은 1995년 제67회 오스카 시상식 음악 부문(주제가상, 스코어상)상을 모두 석권, 명실 공히 만화 왕국 디즈니가 만든 최고의 작품임에 이견이 없음을 공증했다. 또한 대중음악상 최고의 영예 그래미 어워드(1994년) 최우수 남성 보컬(엘튼 존)과 최우수 배경음악 편집(한스 짐머), 아이들을 위한 최우수 음악 앨범 부문을 수상해 겹경사를 누렸다. 미국 만화영화가 지구촌 영화 시장을 점령하는데 결정적 가교 역할을 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은 세대를 초월한 영화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음악적 혁신도 성공에 지대한 변수로 작용했다. 이전까지 연타석 흥행 홈런을 날리며 강성 디즈니 만화의 자존심을 확립한 트로이카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알라딘(Aladdin)>의 음악을 담당하며 흥행 공식의 일원으로 자리 잡은 앨런 멘켄(Alan Menken)팀을 전격 해임하고, 만사능통형 영화음악 작곡가 한스 짐머의 미디어벤처 팀과 ‘팝계의 불사조’ 엘튼 존을 초청해 새 진영을 구축, ‘원 투 뮤직 펀치’를 날린 것.
8. <탑 건(Top Gun, 1986)> 판매량 : 9백만 장
“1980년대 미국 보수주의 물결과 남성성을 멋지게 버무려 속도감 있는 영상으로 전개시켜 젊은이들의 가슴? 불을 당긴 토니 스콧 감독의 1986년도 작품. 항공 재킷과 선글라스 붐을 일으키며 톰 크루즈를 일약 청춘스타 대열에 쏘아 올린 당대 최고의 흥행 대작이었다. 영화와 더불어 당시 사운드트랙 역시 당시의 음악적 경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1980년대 팝 음악은 신스 팝과 뉴 웨이브로 정의된다. 비틀스 이후 제2의 영국의 미국 침공으로 단언되는 뉴 웨이브는 음악 판도를 바꿔놓을 정도로 팝의 본토 미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른 <탑 건> 영화음악 앨범은 한마디로 ‘히트 싱글 모음집’이라 할만하다. 통통 튀는 댄스 비트가 주도하는 1980년대 팝송을 총망라한다. <자유의 댄스(Footloose)>의 주제가 「Footloose」 주인공이자 <오버 더 톱(Over The Top)>의 테마 곡인 「Meet me half way」를 노래해 사운드트랙으로도 주가를 올린 베테랑 케니 로긴스, 힘찬 기타 팝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칩 트릭, 여성 보컬 글로리아 에스테판과 그룹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까지 당대의 인기 팝가수들이 귀를 사로잡는다.
영화에서 가장 유명해진 곡은 이견의 여지없이 「Take my breath away」일 것이다. 반항의 젊은 청춘 조종사 톰 크루즈와 여성 교관 사이에 진하게 펼쳐지는 애정 장면에 사용된 러브 테마. 이 한 곡으로 LA출신 뉴웨이브 그룹 베를린(Berlin)은 차트 정상을 차지, 무명의 설움을 털어냈다. 국내에서 특히 그 폭발적 인기는 국내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단골 리퀘스트 송이 됨으로써 한참 지속되었다. 나중에는 듣기 싫어도 들어야만 했을 정도. 그 영광의 배후에는 「Top Gun Anthem」으로 그래미상을 거머쥔 해롤드 폴터메이어와 디스코 댄스 팝의 제왕 조르지오 모로더가 든든히 뒤를 받치고 있었다.
9. <그리스(Grease, 1978)> 판매량 : 8백만 장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해 대성공을 창출해낸 작품으로 무엇보다 존 트라볼타와 올리비아 뉴튼존의 노래와 춤 앙상블로 기억된다. 영화와 음악 모두 1978년을 화려하게 장식하면서 그 해를 미 역사상 가장 음반 산업이 맹위를 떨친 시절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지금 40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영화 그리고 사운드트랙이다.”
앨범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Hound dog」으로 대표되는 로큰롤, 그룹 마셀즈가 차트 정상에 올린 「Blue moon」이나 리틀 앤소니 앤 더 임페리얼스의 「Tears on my pillow」 같은 두왑 그리고 연주로 처리된 영화 <모정(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의 주제곡 「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과 같은 저 옛날의 영화음악이 큰 줄기를 이룬다. 초기 로큰롤을 해석한 그룹 샤나나의 「Those magic changes」가 웅변하듯 추억과 낭만의 정서가 유쾌하고 즐겁게 퍼져 있다.
9. <자유의 댄스(Footloose, 1984)> 판매량 : 8백만 장
“<페임>, <플래시댄스>, <더티 댄싱>과 함께 1980년대 춤 바람을 일으켰던 대표적 영화들 중 한 작품. <자유의 댄스>는 극적 로맨스와 애욕의 댄스가 화려하게 수놓는 영상미에 당시의 트렌드 팝 음악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전형적인 ‘뮤지컬 드라마’다. 온몸을 불사른 다이내믹한 춤으로 당대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급부상한 케빈 베이컨의 연기가 압권이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작품의 백미는 그의 율동을 신들린 것처럼 돋보이게 만든 사운드트랙이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음악 중 백미는 동명 제목의 주제가, 쿵쾅거리는 드러밍과 중량감 있는 고탄력 서프 기타 사운드의 경쾌한 업 비트 댄스 리듬으로 시작해 색소폰, 신서사이저, 키보드, 퍼커션, 백 보컬과 멋진 화음을 이루며 주인공 렌(케빈 베이컨 분)의 스포티한 춤에 초절정 흥을 돋우는 「Footloose」임에 이견 불가. 이 노래를 부른 케니 로긴스는 당시 최고의 영화음악 가수로 각광받았다. 또한 사운드트랙에는 팝-록밴드 러버보이의 보컬 마이크 레노와 하드록그룹 하트의 ? 윌슨, 그리고 허스키 록 보컬의 대명사로 불린 보니 타일러, 포크 록 싱어송 라이터 칼라 보노프, 록 밴드 포리너 등의 인기 팝 록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해 사운드의 중량감을 높였다. 사운드트랙은 무려 10주간 앨범 차트 정상을 고수했으며 8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10. <사랑을 기다리며(Waiting To Exhale, 1995)> 판매량 : 7백만 장
“베를린(Berlin)의 「Take my breath away」는 1986년에 <탑 건>의 사운드트랙을 팝 앨범 차트 정상으로 밀어 올렸다. 9년 후, R&B 팝 디바 휘트니 휴스턴은 주제가 「Exhale (Shoop shoop)」을 노래하며 이 사운드트랙 앨범이 차트 정상에 오르는데 기여했다. 3년 전의 <보디가드>와 함께 휘트니의 진가를 다시금 확증한 사운드트랙 앨범.”
휘트니 휴스턴의 전작 <보디가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음악이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이다. 말이 필요 없는 R&B 최고의 프로듀서인 베이비페이스가 사운드트랙의 제작을 맡았으며, 휘트니 휴스턴을 비롯해 토니 브랙스턴, TLC, 메리 제이 블라이지 등의 슈퍼스타가 가수로 참여해 흥행과 비평 면에서 가히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세 트랙이 사운드트랙을 주도한다. 팝 차트 1위를 차지한 주제가 「Exhale(Shoop shoop)」을 위시해 「Why does it hurt so bad」, 세세 윌리엄스와의 듀엣곡 「Count on me」 등 그녀의 파워풀하며 동시에 감성적인 발라드가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뒤를 잇는 토니 브랙스턴의 「Let it flow」와 아레사 프랭클린의 「It hurts like hell」, TLC의 「This is how it works」와 같은 곡들도 주목해 들을만한 트랙이다.
두사람의 시나리오를 함께 쓰고 여러 메이저 스튜디오를 찾아다녔는데 그 들은 모두 [백 투 더 퓨쳐]를 거절합니다.
"제목에 '퓨처'가 들어간 영화는 망해"
"귀엽고 따뜻하지만 섹시하진 않아"
1980년대 초엔 [리치몬드 하이]같은 성인용 틴에이저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백 투 더 퓨쳐]는 너무 가벼웠던 것입니다.
반대로 디즈니의 경우는 "엄마가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오이디푸스 이야기 라니!" 이런 이유로 거절햇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이유들의 속내는 따로 있었으니, "감독이 별볼일 없잖아"
그도 그럴 것이 로버트 저메키스는 1978년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라는 비틀즈 노래 제목에서 따온 영화로 데뷔했지만 흥행에서는 쓴맛을 본 그저 그런 신예에 불과했습니다.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는 스필버그가 제작했습니다. 스필버스 역시 믿었던 후배가 터져주지 않자 노심초사 했습니다.
저메키스는 전략적 후퇴를 선택합니다.
[백 투더 퓨처]를 일단 접고 다른 영화를 만드는 그 영화들은 [중고차 소동], [로맨싱 스톤] 입니다.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해서 이제 더 이상 '듣보잡'소리는 안 들어도 될 정도가 됐습니다.
그는 이제 숨겨왔던 비장의 무기인 [백 투 더 퓨쳐]시나리오를 다시 들이밉니다.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헐리우드가 완전히 돌아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메키스는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의 제작자였던 스티븐 스필버그를 찾아갔고 결국 스필버그의 앰블린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사로 유너버셜 픽처스가 배급사로 나서게 됩니다.
당시 저메키스는 이 영화가 실패하면 다시는 영화를 찍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게일은 나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필버그와 친구였기에 이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2. [명왕성에서 온 우주인]으로 제목이 바뀔 뻔 했습니다.
영화를 배급하기로 한 유니버설 픽처스의 시드니 셰인버그 이사는 몇가지 조건을 내겁니다.
첫째, 마티의 엄마 이름을 자신의 와이프 이름을 딴 로레인으로 바꿀 것
둘째, 브라운 교수 대신 "닥" 브라운으로 바꿀 것
셋째, 브라운이 기르는 침팬지를 강아지로 바꿀 것
마지막은 영화 제목을 다음과 같이 바꾸라는 것 이었습니다.
[명왕성에서 온 우주인]
영화 속에 마티가 아빠 조지 앞에 우주복을 입고 나타나 "나는 벌칸 행성에서 온 다스 베이더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에 대해 셰인버그는 "나는 명왕성에서 온 다스 베이더다" 이렇게 대사를 바꾸면 제목과 맞는다고 제안합니다.
또 영화 속에 농부의 아들이 만화책을 보는 장면에서 만화책의 제목이 'space zombies from pluto'인데 이것을 "spaceman from pluto'로 바꾸라고 요구합니다.
요구를 들어주자니 영화가 산으로 가고, 안들어주자니 영화를 못 찍을 위기에 처한 순간, 저메키스는 스필버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능력자 스필버그는 셰인버그에게 메모 한장을 보내 모든 상황을 종료시킵니다.
그리고는 저메키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말한 건 그냥 농담이었네, 나네 하고 싶은대로 하게."
이처럼 유니버셜 픽처스의 간섭은 어마무시했나 봅니다. 영화속에 악당으로 등장하는 비프 타넨은 유니버셜 픽처스의 이사 네드 타넨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저메키스의 게일은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 제작 당시 시나리오 미팅에서 까다롭게 굴었던 타넨을 악당이름으로 쓰면 복수했다고 합니다.
3. 타임머신은 원래 냉장고 였다.
DMC의 드로리언 자동차를 개조한 타임머신은 [백 투 더 퓨쳐]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애초 저메키스가 초고에 쓴 타임머신은 냉장고 였다고 합니다.
냉장고 문을 닫고 들어가 핵연료를 작동시키면 다른 시간에 도착해 있는 겁니다.
핵연료는 1955년 네바다 핵심헐 장소에서 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메키스는 냉장고의 부작용을 우려했습니다.
영화를 본 아이들이 이를 모방해 냉장고에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는 상황이 걱정됐던것입니다.
그래서 타임머신을 움직이는 물체로 바꾸기로 합니다.
비행접시 같은 것을 생각하다가 결국 확정한 것은 드로리언 자동차 입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돌고 돕니다.
저메키스가 생각했던 냉장고와 1955년 네바다 핵실험 장소는 훗날 스필버그가 2008년 [인디아나 존스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을 만들때 쓰엿습니다.
4. 주인공은 마이클 J.폭스가 아닌 에릭 스톨츠 였다.
원래 성공한 영화는 나중에 이런저런 캐스팅 비화가 나오게 마련입니다만 이 영화는 심합니다.
애초 저메키스와 게일은 마이클 J.폭스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그런데 폭스는 [패밀리 타이]라는 TV시리즈를 찍고 있었고 방송 프로듀서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차선을 찾았고 몇명의 후보군 중 에릭 스톨츠로 최종 낙점합니다.
그리고 촬영에 들어 갑니다.
하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감독과 배우는 뭔가 맞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스톨츠는 유머가 없었고 스케이트보드 타는 모습이 어색했고 무엇보다 마티 맥플라이가 아니었습니다.
저메키스와 스필버그는 지금까지 찍어 놓은 것을 다 버리고 다시 찍기로 합니다.
가뜩이나 적은 제작비에서 3백만 달러가 추가되는 순간입니다.
감독은 다시 다시 폭스와 접촉했고 이번엔 다행히 TV제작자가 스케줄을 허락합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합류한 폭스는 캐릭터와 최고의 궁합을 보여줍니다.
"저도 고등학교때 스케이트 보드 타고 여자 쫓아다니고 밴드에서 연주하며 록스타를 꿈꿨거든요."
그가 연기한 마티 맥플라이는 마티 맥플라이 그 자체였습니다.
에릭 스톨츠는 어떻게 됐냐고요?
물론 [백 투더 퓨쳐]가 잘돼 힘들었겠지만 이후 1990년대 들어 [킬링 조], [펄프 픽션]으로 이름을 알립니다.
5. 스필버그는 음악감독을 안좋아했다
지금이야 [백 투더 퓨쳐]의 음악이 유명해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쓰이지만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음악을 맡은 알란 실베스트리는 [로맨싱 스톤]에서 저메키스와 작업한 인연으로 일찌감치 합류했는데요